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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Travel] 21화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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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6-10-02 14:56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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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 요약 · 조영환 · 여행의 계절, 다시 걷는 스페인

론다를 떠나 그라나다 알람브라까지. 이 시리즈에서 가장 긴 편이고, 알람브라의 건축·급수 기술과 이베리아반도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.

론다 — 점심
· 누에보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지.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타파스 바 라 타베르나의 흔적이 남은 거리다
· 식당은 Parking Plaza Del Socorro 앞 엘 반돌레로(El Bandolero). 엔트레코트와 구운 감자, 새우 야채샐러드, 갓 구운 빵에 와인, 후식은 티라미수와 커피
· 엔트레코트는 프랑스어로 갈비 사이를 뜻하며 소갈비뼈와 등뼈 사이 부위다. 리브아이와 유사하고 마블링이 풍부하다
· 론다를 바라보는 청동 조각상은 2007년 조각가 Paco Perra 작품으로, 안달루시아 민족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치가 블라스 인판테(1885~1936)다

그라나다와 나스르 왕조
· 해발 약 740m 고원.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턱으로 가장 내륙이라 여름 더위가 극심하다. 도로변 산 능선에 집시들의 토굴이 즐비한데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. 1월 초순이 방문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는 평
· 이베리아반도에서 패퇴하던 이슬람 세력 일부가 그라나다에 정착해 세운 마지막 왕조가 나스르(Nazarí) 왕조다. 1230년부터 1492년 마지막 통치자 무함마드 12세까지 그라나다를 지배했다

레콘키스타 요약
·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이 이베리아반도를 침입해, 북부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제외한 전역을 지배했다
·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에 걸친 국토회복운동. 아스투리아스의 알폰소 1세가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어 레온을 정복하며 본격화됐고, 레온 왕국은 알폰소 3세 때 두에로강 일대까지 확장했다
· 11세기 나바라 왕국 산초 3세가 카스티야·아라곤·레온을 정복해 북부의 강자가 됐으나, 사후 세 아들에게 분할되며 주도권이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넘어갔다
· 1037년 후우마이야 왕조 패망 후 이슬람 지역은 타이파(소규모 독립 왕국)로 분열됐고, 알모라비드·알모하드 왕조를 거치며 다시 분열이 반복됐다
· 146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이 결혼해 공동 왕국이 성립, 1492년 1월 2일 그라나다 함락으로 781년에 걸친 이슬람 통치가 끝났다
· 같은 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했고, 스페인은 알람브라 칙령을 반포해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추방했다

이름 표기
· 알람브라는 아랍어로 붉다는 뜻이며 궁전과 성곽이 결합된 복합 성채다. 스페인어에서 h는 묵음이므로 알함브라가 아니라 알람브라로 읽고 쓰는 것이 맞다는 설명

건축 기술 — 이 글의 핵심
· 주변에 큰 암석이나 목재가 풍부하지 않고 땅은 온통 붉은 흙이다. 무너진 벽과 타워를 보면 붉은 진흙과 자갈이 섞인 점토벽돌로 쌓아 올린 구조가 드러난다
· 진흙을 반죽해 거푸집에 채우고 각재로 고정해 벽을 쌓는 방식으로, 오늘날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부어 짓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다

급수 기술 — 가압펌프 없이 분수를 만든 방법
· 식수와 농업용수는 연중 눈이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끌어왔다. 13세기 토목 기술로 언덕에는 높이 2m, 너비 1m의 터널을 뚫고 계곡에는 수로용 다리를 놓아 궁전까지 물길을 확보했으며, 궁성에 약 5천 명이 살았다
· 물사다리(Escalera del Agua) — 저자가 직접 올라가 확인한 구조. 넓은 사각 개거가 아니라 어른 손으로 감쌀 만한 좁은 수로가 약 30도 경사로 내려오고, 두 줄기가 각각 땅속 좁은 수로관으로 바로 떨어지며 수압을 높이는 구조였다
· 즉 고저차를 이용한 자연 수압 방식으로 분수의 분출 정도를 결정했다. 가압펌프가 없던 시대의 해법이며 지금도 당시 관개시설 대부분을 그대로 쓴다
· 물을 계속 흐르게 설계한 이유는 두 가지. 흐르는 깨끗한 물이 이슬람의 청렴을 상징하는 것과, 외적이 수원에 독극물을 풀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함이다. 연못에 물고기를 키워 오염을 감지하고 성곽 밖으로 배수를 완벽히 했다
· 지금 꽃과 나무로 꾸며진 정원은 당시 자급자족용 농토였다

궁전 구성
· 알카사바(Alcazaba) — 1238년 착공 때 궁전보다 먼저 지은 방어 요새와 타워. 성곽을 두른 13개 타워가 경비초소 역할을 했다. 왕궁보다 요새를 먼저 지었다는 점에서 가톨릭 군대에 쫓겨 온 나스르 왕조의 두려움을 읽는다
· 나사리 궁전 — 외궁에서 의식과 외부 접견이 이뤄졌다. 두 자매의 방과 돔형 천장. 벽 장식에 쓰인 스투코는 골재·분말·물을 섞은 미장 재료로 굳으면 단단해져 방화성과 내구성을 높인다
· 사자의 궁전 — 분수를 떠받치는 12마리 대리석 사자상은 이슬람 양식이 아니라 주변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
· 아라야네스 정원 — 35m × 7m 직사각형. 연못에 비친 기둥과 건물의 대칭이 핵심
· 코마레스 궁전 — 유수프 1세가 기독교 세력을 공격했다 대패한 뒤, 불안을 떨치려 증축한 궁전. 요새와 타워를 보강하고 관개수로·창고·공중목욕탕·사원·정원을 추가했다. 완성 후 주변국 귀족을 초청해 과시함으로써 군사적 열세에도 왕국을 유지한 허장성세의 책략으로 해석한다
· 제네랄리페 — 술탄의 여름 궁전과 분수 정원.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힌다

함락 이후
· 1492년 가톨릭 동맹군이 알람브라를 함락했다. 궁전 완성 150년 뒤였고, 나스르 왕조는 북아프리카로 퇴각했다
· 가톨릭 군대는 이슬람 흔적을 지우려 했으나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거의 바꾸지 못했다. 궁성이 아름다우니 파손하지 말라는 이사벨 여왕의 결정이 있었다
· 카를로스 5세 궁전 — 1526년 착공해 40년 남짓 지었으나 아랍인 반란으로 중단된 미완성 르네상스 건물. 미켈란젤로의 제자 마추카의 유일한 작품이며 정사각형 내부에 원형 파티오, 1층 도리아식·2층 이오니아식 열주가 특징
· 이후 300년간 잊혔고 그 사이 집시들이 들어와 살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됐다. 미국 공사관 워싱턴 어빙이 여행 중 발견해 집시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아 알람브라 이야기로 출간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

음악: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은 제네랄리페 분수의 물방울 소리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지며, 영화 킬링필드의 삽입곡으로도 쓰였다.


21화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

https://brunch.co.kr/@thebcstory/144

[출처:web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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